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장기 침체를 겪으며 도시계획과 부동산 정책을 새롭게 정립해 왔습니다. 도심 재생, 고밀도 복합개발, 고령사회 대응형 주거정책 등은 인구 감소와 경제 성장 둔화 속에서도 주택시장 안정성과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추구한 전략의 일환입니다. 본 글에서는 일본의 도시계획 체계, 부동산 관련 주요 정책 변화, 정책의 실효성과 함께 한국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시사점을 종합적으로 분석합니다.
버블 붕괴 이후 새롭게 설계된 일본의 도시와 주거 정책
1990년대 초 일본은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인해 심각한 경기 침체에 직면하였고, 이는 도시개발과 주거 정책 전반에 중대한 전환점을 가져왔습니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무분별한 택지개발과 수도권 중심의 확장 위주 정책이 지배적이었다면, 버블 붕괴 이후에는 ‘축소의 도시계획’, ‘도심 집중형 개발’, ‘고령자 친화형 주거환경’ 등 보다 내실 있는 전략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반영한 주거 정책이 마련되었습니다. 특히 중소도시의 쇠퇴, 공실 문제, 교통 인프라 과잉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콤팩트 시티(compact city)’ 전략을 제시하고, 생활권 내 자족적 도시를 조성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이동시켰습니다. 또한 재해 위험이 높은 지역에 대한 도시계획 제한, 저이용 토지의 재활용 촉진, 민간 주도의 재개발 유도 등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도시의 질적 향상을 꾀했습니다. 도시계획은 더 이상 ‘확장’이 아닌 ‘재구성’의 개념으로 접근되었고, 이는 부동산 정책의 본질적 변화를 의미하는 중요한 흐름이 되었습니다.
일본 도시계획과 부동산 정책의 구체적 방향
일본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분업적으로 도시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며, 주요 정책 방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첫째, 도심 재생 및 역세권 고밀도 개발입니다. 기존의 구도심 기능을 보존하면서도 노후화된 주거지 및 상업지를 리모델링하거나 철거 후 복합용도로 재개발하는 방식이 확대되었습니다. 도심 회귀 현상을 유도하기 위해 역세권 지역에는 고층 주거시설, 복합상업시설, 공공인프라를 유기적으로 배치하였고, 지방정부의 용적률 인센티브 제공과 민간 투자 유도를 통해 성과를 도출하였습니다. 둘째, 주택 공급의 다양화와 품질 제고입니다. 고령자, 1인 가구, 신혼부부 등 생애주기별 수요에 맞춘 주택 유형이 확대되었으며, 장기공공임대와 민간임대의 역할 구분도 명확해졌습니다. 또한 정부는 ‘장수명 주택 인증제도’를 도입하여, 내진성과 친환경성을 갖춘 고품질 주택 공급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셋째, 재해 대응형 도시 구조 구축입니다. 일본은 자연재해 빈도가 높기 때문에, 도시계획에서 재해 위험지대를 회피하거나 안전시설을 집중 배치하는 ‘도시방재 계획’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부동산 가격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안전한 주거지를 선호하는 수요를 반영한 정책 방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넷째, 지방 도시의 자립 유도입니다. 인구 감소로 인해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도시들은 콤팩트시티 전략을 통해 의료, 교육, 교통, 상업 기능이 통합된 ‘생활축 중심 개발’을 시도하고 있으며, 중심지 활성화 지원법과 공공시설 통합 등이 병행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토지 활용의 효율성 제고입니다. 일본은 저이용 토지를 효과적으로 재배치하기 위해 ‘도시계획 변경 심의제’, ‘특정도시재생구역’ 등의 제도를 도입하였으며, 이를 통해 민간이 참여하는 형태의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과 정책적 함의
일본의 도시계획 및 부동산 정책은 단기적 수요 대응보다는 장기적인 구조 개편과 질적 향상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첫째, 도심 재생을 통한 수요 재배치는 수도권 과밀 문제를 겪고 있는 한국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서울과 수도권 외곽의 고밀도 개발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교통혼잡과 기반시설 한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처럼 도심 중심의 고밀·복합 개발과 노후화 지역의 체계적 리뉴얼이 필요합니다. 둘째, 고령화 대응형 주택정책의 강화입니다. 일본은 노년층이 거주하기에 안전하고 편리한 주거 환경 조성을 위해 주택 기준을 세분화하고, 바닥 난방, 엘리베이터, 안전 손잡이 등 디테일한 기준을 마련하였습니다. 한국 또한 고령사회로 진입한 만큼, 단순한 노인복지 차원이 아닌 도시 구조 차원의 대응이 시급합니다. 셋째, 지방도시의 기능 회복 전략입니다. 일본의 콤팩트시티 모델은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는 혁신적인 방법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한국의 지방도시도 분산된 기능을 통합하여 거점 중심의 주거지 정책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공공기관 이전과 연계된 주택정책이 함께 추진되어야 합니다. 넷째, 재해 대응형 도시계획의 제도화입니다. 특히 지진, 홍수, 산사태 등 재난 리스크가 증가하는 기후변화 시대에 있어, 주택정책과 방재정책의 연계는 앞으로의 부동산 정책 수립 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요소입니다. 결론적으로 일본의 사례는 단순히 ‘건물을 공급하는 정책’에서 벗어나, 도시의 미래 구조와 삶의 질을 총체적으로 설계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한국 역시 부동산 정책을 도시계획과 통합적으로 접근하여, 단기적 시장 대응이 아닌 구조적 안정과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도모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