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와 도심 집중화,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은 대한민국의 주거 안전망에 중대한 위협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2022년 서울 반지하 침수 사고처럼 단 한 번의 국지성 집중호우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재난은 예외’라는 인식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예외가 아닙니다. 이상기후가 일상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주택 정책은 이제 재난 회복력과 대응력을 내재한 방향으로 완전히 재편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우리나라 주택의 재난 취약성을 진단하고, 강력하고 실질적인 정책 강화 방안을 심층적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재난에 취약한 대한민국 주거 환경의 현주소
대한민국은 지리적 특성상 재난 위험이 상존하는 국가입니다. 태풍, 집중호우, 산사태, 지진, 한파 등 다양한 재해가 매년 반복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주택 피해도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 및 수도권의 반지하 주거, 노후 다세대주택, 무허가 건축물 등은 구조적으로 재난에 매우 취약하며, 실질적인 위험이 누적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십만 명이 이러한 환경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2022년 서울 관악구에서는 단 한 번의 폭우로 인해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가족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는 국민적 공분과 함께 ‘왜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후 서울시는 반지하 주거 퇴출을 선언하고 단계적 주거 이전 정책을 내놓았지만, 주택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대체주거 부족, 임대료 상승 등 현실적 한계로 인해 근본적 해법은 여전히 미흡한 상황입니다. 또한 지방의 경우, 산사태 및 하천 범람 위험 지역에 자리한 단독주택과 농촌 고령가구의 경우에는 행정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특히 고령층 1인 가구는 재난 발생 시 외부와의 소통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초기 구조 골든타임을 놓치기 쉽고 이는 생명과 직결된 문제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현재의 주거 정책은 공급 중심, 시장 안정 중심으로 설계되어 재난 회복력은 주요 고려 요인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구조적인 관점에서 주택 정책을 재설계하고, 재난에 강한 거주 환경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체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재난 회복력 강화를 위한 실질적 주택 정책 방향
재난 대비 주택 정책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인프라’, ‘법·제도적 구조’, ‘사회적 지원망’이라는 세 축이 동시에 정비되어야 합니다. 첫째, 물리적 인프라 측면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취약 주거지에 대한 전수조사 및 위험등급화’입니다. 전국의 반지하, 옥탑방, 반지상 등 비정형 주거 유형에 대해 국토부·지자체·소방청이 공동으로 전수조사를 시행하고, 하천 인접성, 배수체계, 구조물 내구성, 출입구 위치, 자연채광 등 다중 요소를 평가해 등급을 부여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위험등급이 일정 수준 이하인 주택은 즉각적인 대피 명령, 주거 이전 지원, 리모델링 유도 등의 조치가 자동으로 시행되어야 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법적 장치 또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둘째, 건축법 및 주택법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합니다. 기존 법령은 주거의 쾌적성, 면적, 건축 높이 등의 기술적 기준에는 엄격하지만, 재난에 대한 저항력 기준은 상대적으로 느슨합니다. 이제는 모든 신축 및 개축 주택에 대해 내수성, 내진성, 내풍성 등의 재난 대응력을 별도 평가 지표로 삼고, 공공임대 및 저소득층 지원 주택에 대해서는 재난방재 기준을 강화하여 의무 적용해야 합니다. 셋째, 사회적 안전망 확충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난 취약계층 중심의 사전 대피 시스템’입니다. 저소득 가구, 장애인, 독거노인, 어린이 등은 재난 발생 시 자력 대피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주민등록 시스템과 연계된 ‘재난대피 취약계층 알림망’을 구축하고, 커뮤니티 중심의 ‘대피 조력자 지정 제도’를 운영해야 합니다. 또한 사전등록제를 통해 반지하나 고위험 주택에 거주하는 주민에게는 상시 대피 안내 메시지와 자동 경보 시스템을 제공하고, 관련 정보가 행정기관과 소방본부에 실시간 공유되도록 ICT 기반으로 통합해야 합니다. 이외에도 주택도시기금 일부를 재난 회복력 강화를 위한 ‘생활 방재 리모델링’에 지원하도록 하고,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태풍 및 집중호우 시 임시 주거 공간을 자동으로 제공하는 시스템도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단기적인 정책 효과뿐 아니라, 국민 신뢰와 정책의 정당성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하게 됩니다.
재난 회복형 주거정책, 국민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대한민국은 재난의 시대로 진입했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기후 재난과 도시화로 인한 인프라 포화는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안전의 개념을 재정의하도록 만들고 있으며, 이제 주거정책은 단지 삶의 질 향상 수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인프라로 다뤄져야 합니다. 재난에 강한 주거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공급자 중심의 양적 확대가 아닌, 수요자 중심의 질적 안전성을 담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바로 정책입니다. 정부는 ‘사고 이후 지원’이라는 소극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위험의 사전 인지와 회피, 구조적 예방, 피해 최소화’라는 적극적·선제적 정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국민의 생명은 숫자가 아니라 실체입니다. 반지하에 사는 한 가족이 희생되는 현실은 결코 뉴스 속 사건에 머물러선 안 되며, 정책이 바로 그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설계하는 한 조각의 주택 정책이, 미래의 재난을 막고, 국민의 삶을 지키는 실질적 방패가 될 수 있습니다. 안전한 대한민국은 바로 ‘재난 회복력 있는 주거정책’에서 시작합니다.